얼마 전 스팀에서 ‘프린세스 메이커 1,2 리파인’ 이 발매되었다. 1995년(‘프린세스 메이커 1’은 1991년)발매된 이 게임은 육성 시뮬레이션 장르의 시초이자 바이블이다. 물론 지금에야 모두가 즐기는 육성 시뮬레이션이라지만, 처음부터 프린세스 메이커가 온 가족의 육성 시뮬레이션의 탈을 쓴 것은 아니었다. 1편의 경우 딸의 옷을 ‘벗긴다’는 선택지가 존재했고 딸을 때릴 경우 매력(원판은 색기)이 올랐다. 2편의 경우 원조교제를 제안하는 남성 캐릭터들이 나왔으며 매력이 높은 상태에서 무사수행을 갔을 때 강간을 당하는 이벤트도 존재했다. 딸의 나이가 어느 정도 차게 되면, 아르바이트 항목에 매춘이 추가로 발생하며 바캉스를 가게 되...
뮤지컬 <시카고>에서 내가 언제나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셀 블록 탱고도, '오, 우리 둘 다 총을 향해 손을 뻗었죠!'도 아닌 피날레다. 공연 내내 공간을 꽉 채우던 재즈 밴드도, 감옥을 연상시키는 배경과 소품도 모두 금색 술로 무지막지하게 가려지고 번쩍이는 무대 위에 등장하는 것은 오직 벨마와 록시. 합을 맞춰 나란히 춤추는 둘은 오랜 시간 싸워 지켜낸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온 몸으로 말한다. 을지로의 바 '신도시'에 오후 다섯 시 경 사전 인터뷰를 위해 들어섰을 때, <Laugh Louder(아래 래프 라우더)>의 출연진과 기획진은 테이블을 밟고 올라선 채 바로 그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금색...
RPG, 풀어쓰면 Role Playing Game이라는 이 장르는 최근에 와서 의미가 많이 변화했지만 본래 플레이어가 주인공이 되어 스토리상 중요한 선택을 하거나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하며 이야기를 진행하는 장르다. (※ RPG의 정확한 사전적 의미를 서술하기 위해서는 테이블 탑 롤 플레잉 게임부터 언급해야 하지만 본 글에서는 PC/콘솔용 RPG를 위주로 다룬다.) 많은 게이머들이 한번쯤 들어봤을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나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혹은 <울티마> 시리즈 ,<스카이림>시리즈 처럼, RPG는 비현실적인 배경을 주로 제시하고 다양한 스토리와 난관을 해결하는 서사를 제공하며...
*주의: 이 글은 왕좌의 게임 시즌 6까지의 스포일러가 매우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갑옷, 마법, 중상모략과 배신, 피와 계략, 불륜이 난무하는 HBO의 <왕좌의 게임>이 어느새 시즌 6를 마무리지었다. 원작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를 비교적 충실하게 재현하는 데 집중했던 시즌 1, 2, 3과 달리 시즌 4부터 <왕좌의 게임>은 드라마만의 독자 노선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원작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드라마는 팬들의 찬양과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원작에서 매력적으로 묘사됐던 다수의 인물들이 아예 등장하지 않거나 다른 캐릭터와 합쳐지고, 원작에서의 비중이 그저 그랬던 인물...
더 나은 여성의 삶을 위한 콘텐츠 플랫폼 <헤이메이트>가 <핀치>에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2018년을 결산하는 다섯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헤이메이트>의 윤이나, 황효진이라는 필터를 거쳐 올해의 엔터테인먼트 지형을 돌아봅니다. 두번째 순서는 올해의 넷플릭스와 여성. 나는 이상한 방식으로 나를 혼내곤 하는 가계부 어플을 사용하고 있다. 사정이 있어 택시를 많이 탄 주에는 “이럴 거면 차라리 차를 타세요”라고 조언하기도 하고, 커피를 많이 마셨다며 카페인 초과 알림을 보내기도 한다. 그 가계부 어플이 최근 내게 알려준 절약 조언은 바로 ‘안보는 TV 수신 해지하고 돈 아끼기’ 였다. TV나 셋톱박스가 없는 가구는 전기 요금에 포함되어있는 TV 수신료를 해지할 수 있고, 때에 따라서 월에 2,500원씩 부과된 수신료 환급 신청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환급 신청을 고민해볼 겸, 얼마나 오랫동안 TV 시청을 안 했는지 돌아보는 것은 꽤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시간에...
지금까지 게임을 비롯한 미디어 속에서 여성들의 역할은 한정되어 있었다. 주인공의 성취를 위한 보상의 역할이 되거나, 누군가의 어머니/혹은 아내가 되거나, 주인공을 각성시키기 위해 희생하거나. 게임 속의 많은 여성 캐릭터들은 남성 캐릭터의 동기 및 보상의 제공이라는 명목하에 게임의 시작과 끝에만 비중 있게 등장했고 정작 게임 속에 등장하여 주된 활약을 하는 것은 남성들이었다. 미디어 속 천편일률적인 여성 캐릭터들 사이에서 점차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고 여성 캐릭터들은 좁은 틀에서 점차 벗어나기 시작했다. 리부트된 <고스트 버스터즈>에서는 기존 시리즈와는 달리 여성 주인공 넷이 등장했으며, 넷플릭스에서는 <...
본 리뷰는 <Life is strange> 게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게임을 하실 계획이 있다면 반드시 플레이 후 읽기를 권장합니다. Life is strange와 피해자 서사 시간을 여행하는 소재와 관련된 창작물은 영화, 소설, 게임 등 여러 매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자유도를 중시하는 게이머라면 ‘당신의 작은 선택이 미래에 큰 영향을 줍니다.’ 라는 문구는 굉장히 매력적인 요소로 느껴질 것이다. <Life is strange>(아래 LIS)는 어드벤처 장르나 영화 같은 전개를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한번쯤 플레이해 볼 만 하다. 주인공 맥스. © Square Enix 주인공 맥스는 내성적이지만 사진에 대한 재능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 고등학생이다. 그는 동경하던 제퍼슨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며 앞으로 낼 공모전에 어떤 사진을 내야 할지 고민하던 날, 어릴 적 절친했던 친구인 클로이가 죽음의 위험에 빠진 순간을 우연히 목격하게 되고 그 상황에서 시간을 돌려 클로이를 구한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맥스의 이능력이 발현되기 시작한다. 마치 호...
<죽여 마땅한 사람들 / 피터 스완슨(노진선 역, 푸른숲)>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책을 읽으실 분들은 유의 바랍니다. * 피터 스완슨이 쓴 <죽여 마땅한 사람들(노진선 역, 푸른숲)>은 주인공 릴리가 사람들을 살해하는 이야기이다. 한 번 책을 펼치면 덮지 못 할 정도로 흥미진진한 서사 속에서 릴리는 냉정함과 이성을 유지하며 치밀하게 사람을 죽인다. 사이코패스 혹은 심판자의 모습을 한 릴리를 통해 서사 속 여성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해봤다. ...
더 나은 여성의 삶을 위한 콘텐츠 플랫폼 <헤이메이트>가 <핀치>에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2018년을 결산하는 다섯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헤이메이트>의 윤이나, 황효진이라는 필터를 거쳐 올해의 엔터테인먼트 지형을 돌아봅니다. 마지막 순서는 올해의 예능과 여성. 한 해를 결산하며 한국 예능에 대해서 말할 때 몇 년째 인용 중인 장면이 있다. 2015년 연말 <무한도전>의 예능총회. 남자들이 가득한 스튜디오에 고독하게 김숙이 앉아있다. 이경규, 유재석을 필두로 한 수많은 남자 예능인들로도 모자라 김구라는 아들까지 데리고 나왔는데 함께 나왔던 유일한 여성 예능인인 박나래는 중간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전문가로 부른 평론가 역시 셋 다 남자다. 겨우 기회를 잡은 김숙이 말한다. 2015년 예능의 가장 큰 문제점이자 특징은 “남자 판”이었다는 것이라고.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안건은 어물쩡 다음으로 넘어간다....
여자가 주인공인 한국영화를 본 지 너무 오래 됐다. <비밀은 없다(2016)>가 마지막이었다. 주인공 김연홍(손예진)이 실종된 딸의 장례식에서 화려한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씹어 뱉듯이 욕을 던지는 장면이 최고였다. 연홍은 그 때 딸이 죽지 않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비밀은 없다>는 반전이 있는 상업영화로서, 범죄 스릴러로서 훌륭한 작품이었지만 그다지 주목 받지 못했다. 누적 관객 수는 25만 명이었다. 당시 나는 혼란에 빠졌었다. 나만 재미있었나? 내 취향이 독특한 건가? 그런데 <미쓰백(2018)> 이지원 감독의 인터뷰 를 보고, 새로운 가설을 떠올렸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l...
*아래 글에는 <드래곤 에이지>의 게임 속 요소에 대한 해설이 포함돼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분은 멈추어 주세요! 불편하지 않게 약자성 드러내기 <드래곤 에이지:오리진>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성장 배경을 고를 수 있다. 다양한 종족과 직업은 그 세계에서 각 종족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위치나 주요 이슈들을 간접적으로 설명해 준다. 드래곤 에이지의 도시 엘프. 사진제공,Bioware 바이오웨어 사의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는 RPG에 관심있는 게이머라면 아마 한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Polygon에 따르면, 다른 웨스턴-RPG 장르(디아블로, 스카이림 등 서구권 RPG를 말한다)를 즐기고 있는 여성 게이머의 비율은 평균 26%인데 <드래곤 에이지:인퀴지션>을 즐긴 여성 게이머의 비율은 48% 에 달한다. 그렇다면, <드래곤 에이지:인퀴지션>을 비롯한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는 어떤 점에서 여성 게이머 친화적인가?...
더 나은 여성의 삶을 위한 콘텐츠 플랫폼 <헤이메이트>가 <핀치>에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2018년을 결산하는 다섯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헤이메이트>의 윤이나, 황효진이라는 필터를 거쳐 올해의 엔터테인먼트 지형을 돌아봅니다. 첫 순서는 올해의 한국 영화와 여성. 나는 지금 사흘에 걸쳐서 약 30시간 째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의 분량은 원고지 20매지만 나에게는 이미 30매가 넘는 글이 있다. 슬프게도 그 글의 대부분은 여기 실리지 못할텐데, 왜냐하면 중언부언을 영원히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2018년의 한국영화에 대해 말하면서 2017년과 비교했을 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흐름을 짚어보고 싶었다. 이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빠르게 밝혀졌는데 사실 이렇다 할 흐름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